하츠네 미쿠 이타샤 작업기

하츠네 미쿠 이타샤 작업기

내가 처음으로 직접 디자인한 새 이타샤

어쩌다보니 서브컬처 카테고리의 첫 글을 장식하게 되었다. 나름 기간도 길었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였기에 조금 힘을 줘 긴 글을 작성해 보았다.

엥? 갑자기 웬 씹덕차?

입문부터 오너가 되기까지

2015년, 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다방면으로 관심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그와중에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이타샤’라는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흔한 디자인보다는 나만의 개성을 찾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관련 동호회를 찾아 들어갔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동호회는 나왔다)

젠장, 중2병 시절에 심어진 씹덕 유전자 어디 안갔다.

그러다 2018년, 동호회를 통해 알게된 형님이 자녀가 둘이나 생겨 차를 바꾸게되면서 이 차를 내놓았는데, 비록 주행거리가 길지만 관리 상태가 좋고 유지비도 적게 드는 차이기에 좋은 기회를 놓치기 아쉬워 덥석 물어왔다.

전 차주의 새차는 뒤에 있는 니로, 나는 이거 그대로 가져왔다. 근데 이거, 양 옆 이미지는 내가 구해다준건데…??? 👀

삽질의 반복, 시안 디자인

귀찮은 것도 귀찮은 거지만, 개인적으로 기존에 붙어있던 캐릭터가 한때 최애였다. 그래서 안바꾸고 한참 타고 다녔는데 오래되니까 래핑 시트(필름)가 갈라지면서 난리가 났다. 그야 최소 2년, 길면 4년이 지난 부착물이 햇빛까지 주구장창 맞아왔는데 이미 기대수명은 날아가고도 충분히 남았지.. 아무튼 바꾸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미지 선정, 한때의 좌절(?)

하츠네 미쿠라는 캐릭터를 걸고 레이싱을 하는 프로젝트(이하 레이싱 미쿠)가 있다. 그 중 2020년의 메카닉적인 캐릭터 디자인에 꽂혀서 일러스트를 수집했고, 마음에 드는 구도를 찾기 위해 차량의 측면 사진 위에 포토샵으로 이리저리 주물러 보았다.

뭔가, 뭔가 부족해!!!!!! 반대편도 좌측면용 일러스트로 배치하고 대충 이런 식으로 나왔는데…

최근 트렌드에 따라 컷팅된 부분래핑보다는 부착면 전체를 덮으려고 하고 있었다. 딱히 문콕 돌빵 막으려고 그런건 아..닌게아니라 맞구요 그런데 배경이 문제다. 로고는 덕지덕지 붙이기는 싫고, 차가 차인지라 아무 레이싱 데칼을 넣으면 뭔가 구리고, 부분래핑은 뭔가 허전하고, 뭔가 붙여야겠는데 마땅한게 없고… (대충 비슷한 내용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반복)

2020년에 디자인 초안 잡기 시작했는데, 직장 업무 과중까지 겹쳐 사실상 1년간 던져버리게 되었다.

어쩌다 일사천리, 인생지사 새옹지마

이야기를 하기 앞서, 2017년부터 적을 두고 있는 동인 단체 미쿠월렛즈에서 작년부터 일본의 크리에이터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하츠네샵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즐겨 듣는 일본 보컬로이드 동인 음악 레이블 On Prism Records의 앨범아트가 꽤나 예쁘고 차에 배치하기 좋을 것 같아서 그냥 한번 신보 이미지를 얹어봤는데, 배경 문제는 차치하고 생각보다 괜찮게 나왔다.

마침 이 동인 레이블과 하츠네샵이 이미 컨택하고 있는 관계이므로 하츠네샵 담당자(이하 K)에게 잘 부탁해서 일러스트레이터와 연락이 닿았다. 마침 또 원래부터 컨택하려고 했으나 잘 안되었던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연결될 기회가 있어서 그 쪽도 함께 해서 K를 통해 일러스트 사용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個人作品イラストの使用に関してですが、再配布等でない限りは使用を制限していないのでご自由に使っていただいて大丈夫です!

・イラストの用途はElemasさんの痛車ラッピングに限定します
・他の車への張り替えの際はご連絡ください
・万が一車両を売却・廃車等でElemasさんの元から手放す際はラッピングを剥がしてから実施してください

아싸! 대충 요약하면 남한테 주는거 아니고 내 개인 차량에 사용하는거라면 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해당 작가의 일러스트를 싹 다 훑어 보고 마침 또 맘에 드는게 있어서 차에 어울릴 만한 그림을 열심히 찾았다.

전면, 양측면, 윗면에 사용할 이미지를 정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시라유키 토와(白雪とわ), LEN[A-7]. 배경도 반짝반짝하고, 차 색상과 유사하며, 풍성한 머리가 좌우를 채워줘서 딱 좋다. 그리고 작년부터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그림체로 꾸준히 성장 중인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 seomin님에게 차량 곳곳에 포인트를 줄 그림을 의뢰했고, 감사하게도 흔쾌히 승낙받았다.

투고한 팬아트 중 하나. 요런 동글동글하고 귀여운게 매력 포인트다.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 내가 만든 이타샤

기존 래핑 제거, 굳은 다짐

그 사이에 기존 부착물은 더욱 노후화되어 변색되고 곳곳이 갈라지는 등 상태가 심각해졌다. 도장면 망가지기 전에 빨리 해야한다. 그런데 작년은 일러스트 정하다가 흐지부지 됐는데, 이제는 이딴 뻘짓을 또 반복하지 않기 위해 뭔가 극약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일단 래핑부터 떼고 생각하자”, 없으면 ‘빨리 해야지’라거나, 허전함을 느끼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ㅋㅋ

진짜 허전하다. 길가다 무시받기 좋은(?) 보통의 경차가 되었다. (떼다가 인수 전 사고난 부위랑 범퍼 일부가 도색이 떨어져 나가서 사고부위는 보수했다)

일러스트 의뢰, 초안 제작

좌/우측면

좌우 면에 쓸 일러스트는 그린 지 오래 되어서 원본 작업파일이 없다고 해서 머리를 좀 싸맸다. 쓰기에는 딱 좋은데 배경 등 특정 부분을 쉽게 날릴 수도 없고 끝부분이 잘리게 생겼다. 원래 캐릭터 얼굴을 크게 할 생각이 없었지만 반쯤 울며 겨자먹기로 얼굴을 키우고팔 한쪽도 희생하고 각도를 살짝 틀어 어떻게든 좌우 캐릭터 크기 밸런스를 맞추는 선에서 레이어가 잡혔다. 양쪽 전면 펜더와 충전구(주유구) 부분도 미리 선정한 이미지로 허전함을 채웠다. 업스케일링은 waifu-caffe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한 17배는 늘린 것 같다.

후면 (+리어스포일러)

뒤에 뭔가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아서 범퍼를 중심으로 재치있는 아이디어 러프를 요청하고 같이 궁리했다. 열 가지가 넘는 아이디어를 받았는데, 괜찮을만한 것을 선정했다.

범퍼에 있는 수평의 구조물을 테이블이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워지는 모습이다. 그리고 위에서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요소까지 ㅋㅋㅋㅋ??? 배치가 조금 바뀌긴 했지만
본인은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는데.. 다른 것들도 재치가 넘치는 것들이어서 고르기 힘들었음….

후방 센서 간섭이 나지 않도록 옹기종기 모았다.

전면

전면에 쓸 일러스트는 유상으로 배경 재작업을 의뢰했다. 기존 하늘 대신 좀더 밝은 계통이나 청량감 있는 색상으로 새로 작성을 부탁했고, 추가로 색상이 주는 온도감의 밸런스를 맞추고 반짝반짝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RGB에 가까운 조합을 요청했다. 후술할 시공 섹션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시공일 직전에 완성본을 받아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거의 바로 적용했을 정도로 꽤 맘에 드는 이미지를 받았다. 추가로 로고같은 걸 얹자니 구려보여서 과감히 포기하고 여기에 의뢰를 했던 두 작가의 사인을 얹어봤다.

천장

천장 중앙에 들어갈 LEN[A-7]님 이미지는 딱히 건들 것도 없었다. 바로 투입~

시안 완성, 그리고 대망의 시공

차량 부착면은 단순 도화지가 아니라서 시안을 짤 때 생각보다 신경쓸 게 많다. 잘못 배치하면 창문 위로 머리가 잘리거나 (실제로 창문 열면 목이 뎅겅 날아가는 사례도 있다) 차 문을 열었을 때 세로로 반갈죽 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연출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배경색이 차량의 색상과 어울리지 않으면 그것도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된다.

래핑 작업은 비용 또한 적지 않게 들어간다. 그렇다보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뭔가 허전한 곳이 없는지, 구려보이는 것은 없는지 등.. 야매로 배운 포토샵으로 수정 또 수정한 후, 이타샤 작업으로 유명한 아산의 차량 래핑 전문점 비비데칼에 연락을 하여 초안 PSD파일과 사용한 원본 자료들을 전부 넘겨드렸다.

디자인이랑 배치까지 다 해서 그런건지 사장님의 숙련도 덕분인지, 이게 하루만에 뚝딱 시안확정이 되었다. 차량 색상이랑 어울리도록 그라데이션까지 넣어주시고 어느 부분에서 커팅할지까지 다 정해졌다. 그렇게 시공 날짜를 잡고 방문!

이타샤용 래핑은 이렇게 실사 출력용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 후, 별도의 코팅 과정을 거쳐 준비된다. 아 참, 그전에 차량은 입고 전에 부착면을 깔끔하게 닦아주는 건 필수! 부착할 면에는 이물질 뿐만 아니라 왁스 같은 디테일링도 방해가 되는 요소라고 하니, 미리 세차를 하게 될 경우 디테일링은 생략해주는게 좋다더라.

부착 작업을 하기 전, 부착 위치를 최종 체크한다. 어긋나는 곳이 없는지, 원래 배치하고자 했던 위치가 맞는지 최종 점검하는 단계이다. 한창 부착 중에 잘못되면 되돌리기 어려우니 신중히 체크.

오른쪽도 작업. 그라데이션 조절 미스로 실제 부착면에서 그라데이션이 티가 안나는데,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부착 편의를 위해 사이드미러를 탈거 후 작업을 하곤 하신다. 끌어당기는 형태의 도어캐치가 장착된 차량은 캐치도 탈거가 가능한 선에서 탈거 후 진행한다고 한다.

잉? 원래 작업을 (사이드 / 나머지) 로 이틀로 나누어 하기로 했었는데 벌써 다른 걸 뽑아두셨다. 전면 이미지는 시안 작업 요청 시 따로 보내지 않았는데, 출력물을 보고 물음표를 띄운 나를 본 사장님의 덤덤한 한마디 “다 하고 가실래요?”에 반가운 얼굴로 냉큼 전면 시안을 만들어버렸다. 앞서 초안 섹션에서 언급했듯이, 로고를 추가로 얹을랬더니 암만 봐도 구린 느낌이 들어서 ‘꼬우면 나중에 따로 붙이지 뭐’ 하고 사인만 얹어서 전송~ 윗면은 작업 사진 찍는걸 잊어버려서 없다. Aㅏ

벌써부터 영롱하다… 아 참 워셔액 노즐은 이미 와이퍼 암쪽으로 이식했기 떄문에 쓰지 않는 두 쌍의 콧구멍을 제거해버림 ㅎㅎ

이걸 하루만에 완성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거의 10시간에 가까운 작업이었고, 기꺼이 한번에 작업해주신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 한가득 ㅠㅠ (사실 원래 19일에 작업하기로 했는데 기기 고장으로 미뤄졌었는데, 그것 때문에 한번에 해주신 것일까? 뭐 아무튼 기분굿 ><)

짜잔!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차

도로에 스파크는 많지만, 나만의 미쿠 스파크는 그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차가 되었다! 날씨가 맑은 날 물왁스 코팅도 미리 해주고, 맑은날 배경이 꽤 괜찮은 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봤다.

사진

이타샤 오너들끼리 명함처럼 주고받는 스티커가 있다고 해서 만들어서 붙여놨다. 30장 쯤 뽑아놨는데 코로나 시국이 어서 풀려서 친목도 좀 하기를 기원한다 (?)

후기

어쩌다 보니 생일이랑 시공일이랑 얼마 차이도 안나서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 되었다. 생각부터 실천하기까지 오래 걸린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서 마음에 드는데, 감사의 인사를 안 드릴 수가 없다. 긴 시간동안 부지런히 작업하여 완성한 비비데칼, 흔쾌히 일러스트를 제공한 일러스트레이터 3명,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 소개 및 컨택을 도와준 관계자 3명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기회가 되면 직접 내 차로 일본여행도 해보고 싶고, 작가 분들을 직접 만나 인사도 하고 친필 사인도 받고 싶은데 여러모로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

안전운전해야 할 의무감도 업그레이드(?)되었다. 특별한 차를 타게 되면 운전 행태가 단순 운전자의 얼굴이 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이타샤(차/오너)의 이미지가 되고 캐릭터의 이미지가 된다. 더욱 신경써서 운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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